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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답사 블로그

금성대군을 모시는 신당 금성당과 금성대군에 대한 기록

by 그라운드호그 데이 2026. 2. 18.

얼마 전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 이홍위와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순흥으로 유배를 간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등장하는데 금성대군은 단종복위운동 실패 후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묘소는 없습니다.

 

대신 금성대군을 모시는 신단과 사당이 존재합니다. 이중 서울 은평구에도 금성대군을 모시는 신당이 있어 소개합니다.

 

 

 

구파발 → 금성당

 

 

금성당은 구파발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금성당 북쪽에는 이말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내시와 궁녀들이 묻힌 산이라고 합니다.

 

 

 

 

 

 

금성당은 나주 금성산의 산신 금성대왕을 섬기는 금성신앙을 기반으로 한 신당(神堂)입니다. 나주 금성산은 고려 태조 왕건의 군사적 요충지로 태조 왕건과 금성산과 얽힌 일화들이 꽤 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세종대왕님의 아들 중 한명인 금성대군(1426년~1457년)도 신으로 모셔졌다고 합니다.

 

세종의 아들들

 

 

금성대군은 세종의 7번째 왕자로 소헌왕후의 출생 중에서는 6번째 아들입니다. 금성대군 이유(李瑜)는 수양대군(세조) 이유(李瑈)와 한자는 다르나 한글식 발음은 같습니다. 어쨌든 한자가 다르므로 당시에는 동명이인으로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실록에서 나오는 금성대군 기록을 찾아보면

 

세종실록 1442년
임금이 왕비와 같이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집에 이어(移御)하니 동궁(東宮)도 따라갔다.

세종실록 1444년
임금이 왕비와 함께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집에 옮겨 거처하였다.

세종실록 1449년
임금이 불편하시어 금성 대군(錦城大君)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다. 임금이 당상관(堂上官)을 제수하는 일도 모두 세자에게 돌리려고 정부에게 의논하였는데, 정부의 대신이 같은 말로 불가함을 고집하니, 의논이 드디어 잠잠하였다.

 

 

세종시절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그리고 당시 세자였던 문종까지 금성대군의 집에 머물곤 했습니다. 금성대군은 세종이 아플 때 집에 머물만큼 의지할만한 아들이었습니다.

 

단종실록 1455년
수춘군(壽春君) 이현(李玹)이 일찍이 병이 드니, 이유(李瑜)의 집에서 매양 기도(祈禱)하였다.

 

 

그리고 이복동생인 수춘군이 병이 들자 금성대군의 집에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수춘군은 금성대군과 함께 세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단종복위운동 전에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단종복위운동으로 처벌되지는 않았습니다. 

 

 

세조실록에서는 세조의 왕자시절을 기록한 부분에서 나옵니다.

 

세조실록 세종24년(1442년)
"진양 대군(晉陽大君)이 한 번 말에 채찍을 가하여 열 마리의 짐승을 죽이고, 평원대군(平原大君)과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또한 5, 6마리를 죽이어 위내(圍內) 의 짐승들이 세 사람 손에 다 죽어 버릴 것이니, 이는 군사들을 강무하는 본의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군사들로 하여금 이를 쏘게 하려고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나오는 진양대군은 수양대군(세조)의 옛 이름 중 하나입니다. 세조는 수양대군이라고 불리기 이전에 진평대군, 함평대군, 진양대군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습니다. 세조실록은 세조에 대한 미화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여기에서 금성대군도 언급되는 걸 보면 금성대군의 활쏘기나 사냥실력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세조시절에는 단종복위운동에 실패하자 연루되어 처벌받게 됩니다. 그 뒤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에 해당하는 순흥에 유배되었고 순흥에서 다시 단종복위를 꾀하다 경상도 관노 이동(李同)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누설로 좌절됩니다. 이런 세조의 반대진영에서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금성대군이 금성신앙에서 하나의 신처럼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겉모습은 사당이나 신당보다는 평범한 한옥처럼 생겼습니다. 금성당이 무속신앙에 관련된 곳이므로 무당집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2026년 상설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서 방문하시면 위 사진에 나온 활동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운영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10:00~18:00 입니다.

 

 

 

금성당의 역사적인 유래 등에 대한 설명입니다. 금성대군이 있기 전에도 금성신앙은 있었고 후에 금성대군도 모셔지게 됩니다.

 

세종실록 1423년
"김해(金海)의 제석당(帝釋堂)과 나주(羅州)의 금성당(錦城堂)과 삼척(三陟)의 태백당(太白堂)과 그 밖의 외방(外方) 각 고을의 신당(神堂)을 모두 조사하여, 동·서 활인원(東西活人院)과 귀후소(歸厚所)에 나누어 소속시키고, 그 신(神)에게 제사하던 쓰다 남은 물건은 있는 곳의 관원으로 하여금 이를 거두어서 소속된 곳에 바치게 할 것입니다."

 

 

세종시절에 금성당의 물건을 빈민구제를 담당하는 활인원으로 바치게 한 기록입니다. 금성대군이 태어나기 전의 기록이고 이전에도 금성당이 있었던 걸 보여줍니다.

 

 

 

 

 

 

 

내부는 이런 평범한 한옥인데 방에는 무속신앙과 관련된 신당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부적찍기와 소원지 적기를 체험할 수 있는 방입니다.

 

 

 

 

소원지를 적어서 끊으로 묶어 위에 있는 거치대에 걸어둘 수 있습니다. 옆에는 부적도 찍을 수 있게 부적지와 도장도 있습니다.

 

 

 

각각 금은보화, 만사형통 부적을 찍을 수 있습니다.

 

 

 

소원을 적은 뒤 위의 거치대에 끈으로 묶어 걸어두면 됩니다. 연초에 하기 좋은 행사입니다.

 

 

 

 

 

금성당에서 모시는 신들이 그림에 걸려있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불편한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무속신앙에 대한 체험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무복을 입어볼 수 있는 방입니다. 무당들이 입는 옷과 유사해 보이는데 입어보는 체험이 가능합니다.

 

 

 

 

 

오방색 뽑기입니다. 파랑, 빨강, 노랑, 하양, 초록의 총 5개의 색이 있는 깃발이 말려져 있는데 이중에 깃발 하나를 뽑아서 점을 쳐보는 겁니다. 각 색깔에 대한 운세는 사진에 설명에 나와있습니다.

 

 

 

 

저는 빨간색 깃발이 나왔습니다. 목표를 나아갈 때 좋은 기운을 주나 사건·사고를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라 이런 미신은 믿지 않지만 목표를 성취하는 자세를 갖고  사건·사고를 조심하는 건 운세와 별개로 해야하는 일 같습니다. 친구, 가족들과 온다면 해볼만한 체험 같습니다.

 

 

 

 

 

주방처럼 쓰이던 공간인 것 같습니다.

 

 

 

 

 

둘러보고 나서 전체적인 소감을 적어보자면 금성대군을 모시는 신당이라고는 하지만 무속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신당에 가까웠습니다. 초반에 금성대군을 모시고 있다는 설명 외에는 금성대군의 역사적인 기록이나 관련 물건은 없었습니다. 관우나 공자를 모신 사당이 동상이나 그림을 배치해 두기 때문에 비슷한 모습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찾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대신 지금 방문하면 위에 나온 부적찍기, 소원지 적기, 오방색 뽑기 등 여러 체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당이 둘러보고 나오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은평한옥마을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안녕, 금성당'이라는 전시를 한다고 합니다. 여기도 금성대군 관련 역사전시는 아니고 무속신앙에 대한 전시라고 합니다. 무속신앙이나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다면 체험해볼만한 전시 같습니다. 전시기간은 2025.11.06 ~ 2026.04.12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