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녀온 곳은 화의군 이영 묘역과 은평한옥마을입니다. 두 곳은 3호선 구파발역 근처에 있습니다. 구파발역에서는 2km 정도 되는데 대중교통으로 가면 마을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면 됩니다.

저는 구파발역에서 서울시 공용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갔습니다.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매우 완만하고 자전거 타기에 좋았습니다.
화의군 이영 묘역
화의군 이영은 세종대왕의 여섯번째 왕자로 서자 중 첫번째 왕자입니다. 소헌왕후 소생만 본다면 금성대군이 여섯번째 왕자이지만 서자까지 따진다면 화의군이 여섯번째 왕자가 됩니다. 화의군은 1425년 출생으로 예전에 소개한 광평대군과는 동갑입니다.

화의군의 세종시절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 7년 9월 5일 / 1425년
왕자 이영(李瓔)이 출생하였다. 궁인(宮人)이 낳았다.
세종대왕은 본래 왕위를 계승하는 입장이 아니었다가 1418년에 갑작스럽게 세자가 된 후 2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광평대군까지는 모두 왕위에 오르기 전 아내였던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였지만 화의군은 영빈 강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왕자였습니다. 이후 다른 후궁과의 자녀도 태어나게 됩니다.
세종 18년 4월 17일 /1436년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당시 성균관은 성균시에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12살에 성균관에 입학한 것은 아무래도 왕자였던 신분에 특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성균관에서 유생들은 그 다음 과거 합격을 위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왕자였던 화의군은 과거에 응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즘으로 생각해보면 로스쿨을 다니지만 변호사시험은 볼 수 없는 셈인 것 같네요.
세종 23년 8월 12일 / 1441년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와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이 가만히 종[奴] 매읍금(每邑金)과 사정(司正) 박지(朴枝)를 시켜, 여자 두 사람을 남복(男服)을 입히고 도롱이[衣]를 두르게 하여, 어둠을 타서 광화문(光化門)으로 들어오게 하다가 문지기에게 붙잡혔다.
임영대군과 화의군 두명이 평민 여자 두명을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들어오게 하다가 붙잡힌 기록입니다. 젊은시절의 장난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여자 두명에게 가해진 처벌은 꽤 컸습니다. 여자 두명은 장 1백대를 맞고 제주에서 관비생활을 하게됩니다. 여기서 장 1백대는 곤장은 아니고 회초리보다 조금 더 두꺼운 매라고 합니다.
임영대군과는 배다른 이복형제인데 이때는 뜻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세조의 단종왕위찬탈 지지여부에서는 임영대군은 세조를 지지하고 화의군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화의군 이영 묘역 안내판입니다. 내부가 꽤 넓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화의군 이영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에 있습니다. 화의군 이영(1425년~?)의 생몰년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홍살문과 뒤에 정려문이 있습니다.

안내판에 화의군 이영에 대한 약사가 만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화의군의 사당인 충의재와 정려문의 모습입니다.

이곳이 화의군 묘입니다.
화의군의 사망년도가 불명확한 이유는 두가지 기록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선원속보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서의 기록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록1. 선원속보에서는 1460년 2월 21일 사약을 받아 익산에서 장사지내게 됩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세조시절 유배를 간 뒤 사약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화의군은 세조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에 해당했고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어머니와 익산에 유배되었습니다.
기록2. 성종실록(조선왕조실록)에서는 1489년 성종에게 자식을 종실로 거두어 달라고 상소를 올립니다.
성종실록에서 1489년 화의군이 자손을 종실로 거두어 달라고 상소를 올립니다. 왕실직책을 잃은 이후 죄인의 신분으로 험난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로 화의군은 성종에게 작은할아버지가 됩니다. 왕은 특별한 지위이기에 그런 상하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상소를 올린 것이 화의군 본인이 맞다면 화의군은 연도상(1489년 이후 사망)으로도 나이(64세 이상)로도 세종의 자녀들 중 가장 오래 생존한 인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록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화의군은 두 가지 기록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일어난 진실은 하나일텐데 말이죠.

2025년이 화의군 탄생 600주년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조경을 해놨습니다.
화의군 묘역을 둘러보고 화의군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기록은 두 개이지만 진실은 하나일텐데' 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은평한옥마을로 넘어갔습니다.
은평한옥마을
제 글은 화의군 묘역에 대해서 더 길게 쓰지만 두 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화의군 묘역은 잠시 둘러보고 대부분의 시간을 은평한옥마을에서 보낼 것 같습니다.

2014년 12월 은평구에 조성된 한옥전용 주거단지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는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었습니다. 개인 주거용 한옥이 많아서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연산군 묘역이 있길래 가까이서 보니 영산군 이전 묘역이었습니다. 영산군은 성종의 아들이므로 연산군, 중종과는 이복형제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영산군의 동복형제인 이성군은 최영장군묘를 가는 길 근처에 묘역이 있습니다.

이렇게 포토존도 있습니다. 뒤에 살짝 보이는 건물은 하나고등학교라는 하나금융그룹에서 설립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입니다.


근처에 한옥으로 만들어진 카페가 많아서 한 곳에 들어가서 음료를 마셨습니다. 북한산도 구경할 수 있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은평한옥마을도 꽤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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